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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작가의 ‘청소하는 꽃’(2013)이 문화역서울284 전시장 한가운데 세워졌다. 최 작가는 빗자루, 먼지떨이, 대걸레 같은 청소 도구를 한 다발의 화려한 꽃처럼 구성했다. 값싸고 흔한 생활용품이 유쾌한 조형물로 변신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옛 서울역사, 지금의 문화역서울284에 들어서면 잠시 멈칫하게 된다. 1층 중앙 로비에 공사장 풍경이 펼쳐져서다. 비스듬히 열린 맨홀 뚜껑, 도로 공사 때 사용하는 방호벽, 그리고 정확한 이름을 몰라 종종 ‘주황색 고깔’로 불리는 라바콘까지…. 보수·유지라도 하는 걸까. 아니다, 지금은 전시 중.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하 공진원)이 기획한 ‘돌봄의 디자인’이 시작되는 입구다.
작품처럼 전시된 라바콘.
◇도로를 막는 거대한 블록 장난감?= 전시는 ‘돌봄 디자인 사물 읽기’에서 워밍업을 한다. 방호벽과 맨홀 뚜껑, 라바콘의 실물과 이를 표현한 대형 일러스트 그림이 시선을 끄는데, 무엇보다 설명이 흥미롭다. 방호벽은 ‘도로를 막는 거대한 블록 장난감’이다. 오렌지·흰색 등 눈에 잘 띄는 색에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했으니,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도 없다. 그렇다면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온통 파란 방’은 무얼 의미할까. 정답은 ‘보양재(保養材)’. 이사나 건설, 인테리어 시공 중 기존 시설이 손상되지 않도록 사용하는 보호 자재가 엘리베이터를 종종 ‘파란 방’으로 만드는 걸 우린 일상에서 경험한다.
이쯤 되면, 공공디자인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가 범상치 않음을 감지한다. 다소 빤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시작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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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개막식에서 만난 김경배 공진원장은 이에 대해 “도시와 건축, 실내 공간을 끊임없이 관리되고 변화하는 ‘살아 있는 환경’으로 바라봤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 공간을 지속하게 하는 보수와 수선, .검과 관리, 노동의 가치를 조명한 전시”라고 강조했다.
◇꽃이 된 청소 도구·건축을 돌보는 손길= 전시는 새롭게 ‘만드는 일’뿐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유지하고 돌보는 일’로서의 디자인에 초.을 맞췄다. 예컨대 전시 1부 ‘쓸기, 닦기, 지우기’에 전시된 대형 설치작을 보자. 한 다발의 화려한 꽃처럼 보이는 그것은 저명한 설치 미술가 최정화의 ‘청소하는 꽃’(2013)이다. 빗자루, 먼지떨이, 대걸레를 한데 모았는데, 높이가 어른 키를 훌쩍 넘는다. 값싸고 흔하고 낡고 해진 이 사물들이 만든 풍경이 아름답고 유쾌하다. 이 도구를 사용했을 손길을 떠올려보자. 푸근한 마음은 덤이다.
핀란드 예술가 보칼의 ‘파빌리온-돌봄의 건축’(2025)도 인상적이다. 1956년 세워진 베네치아비엔날레 핀란드관이 완공 이후 어떻게 지탱돼 왔는지를 기록한 영상이다. 작품은 시공자, 관리자, 청소 노동자, 복원 전문가들을 건축가와 함께 ‘공동의 창작자’로 바라본다. ‘돌봄의 디자인’이 지속적인 협력과 책임의 과정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전시는 2025년 베네치아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예술감독을 맡았던 CAC의 정다영 큐레이터가 총괄했다. 정 큐레이터는 “디자인의 결과보다 과정, 형태보다 시간, 설계보다 운영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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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물, 시간과 공간이 관계 맺는 방식을 통해 공공디자인의 의미와 범위를 넓히고자 했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미술관 수장고 도장 작업을 찍은 사진.
◇‘보이지 않는 노동’을 보여주다= 보칼과 최정화 작가뿐 아니라 이번 전시에는 정영선 조경가를 비롯해 김태동, 배윤호, 에스오에이, 에이루트, 에이코랩, 중소도시포럼 등 국내외 작가 및 디자이너 20명(팀)이 참여했다. 사진, 조각, 설치, 영상, 모형 등 33。을 선보인다. 관람객들의 눈길을 끄는 건 어쩌면 가장 친숙한 물건이다. 국내서도 인기인 일본 브랜드 무인양품의 청소도구들도 전시됐다. ‘반복을 돕는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이 섹션에선 아트 디렉터인 하라 겐야가 작업한 영상 ‘기분이 좋은 이유는 어째서일까’도 볼 수 있다. 세계 곳곳의 청소 풍경에서 자신의 공간을 돌보는 인류의 보편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손길’을 시각화한 4부 ‘보이지 않는 노동’은 생경한 장면으로 긴 여운을 남긴다. 배윤호 작가의 ‘서울역’ 영상은 2004년 KTX 개통 이후 방치된 옛 서울역사를 닦고 다듬고 되살리는 노동자들의 반복적인 손짓을 담담하게 응시했다. 전시가 열리는 바로 이곳 문화역서울284의 복원 과정이라서 더 의미가 있다. 또, 미술관 수장고 문에 도장 작업을 하는 이, 전시장 바닥을 물청소하는 이, 폭설 후 제설 작업을 마친 인부들의 단체 사진 등이 완성된 건물을 안온하게 누리던 우리의 마음을 한 뼘 더 넓힌다. 1층 서쪽 복도에서는 공진원 주관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올해 수상작도 살펴볼 수 있다. 전시 기간 동안 정 큐레이터가 안내하는 전시 투어, 연구 포럼 등이 진행된다. 11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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