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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루 처마 너머로 본 유홍준 교수의 '국보 0호' 산줄기들은 해 뜨기 전인데도 이미 대낮이었다. 산촌의 해돋이는 들이나 바다와 다르다. 어두운 대지를 달구고 바다를 끓이는 대기시간이 없다. 하늘은 진작에 대낮이고, 동쪽 공제선 어딘가에서 문득 빛줄기가 터지면 해가 뜬 것이다. 아침이 따로 없는 무량수전의 한여름 낮은 그렇게 시작됐다. 최순우와 유홍준의 '영풍 부석사'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중략)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중략)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최순우(1916~1984,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저 구절을 실제 읽어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수록글 제목도 아니고, 스쳐 지나가는 저 한 문장에서 제목을 뽑은 편집자의 안목이 놀랍다. 책 앞뒤로 넓게 펼친 표지가 바로 무량수전에서 바라보는 안양루와 그 너머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다. 영주 부석사 뒷산의 부석. 서산 부남호의 검은여.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검은여 일대는 뭍이 돼 있다. 당시론 드문 문화유산 에세이집의 대히트에는 한 해 앞서 1993년 나온 유홍준 교수(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이하 답사기)도 지분이 있다. 유 교수 책은 원래 그냥 <답사기>로 나왔다가, 후속작들이 거듭되며 번호가 붙기 시작했다. 이듬해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 학고재신서 첫 권으로 나왔고, 한 달 뒤 유홍준 <답사기 2>가 나왔다. '영풍 부석사'편은 이 제2권에 있다. 지금은 행정통합으로 경북 영주시 부석면 '영주 부석사'다. 태백산맥에서 소백산맥이 갈라지는 지., 소백산국립공원의 동쪽 끝 봉황산(819m) 자락이다. 영주 말고 서쪽 끝 충남 서산시에도 한자가 똑같은 부석사浮石寺가 있다. 두 부석사는 위도도 비슷하고, 찻길로 약 270km, 3시간여 거리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방금 맞이한 아침해를 서산 부석사 극락전에서 배웅하면 무슨 맛일까? 릴게임다빈치불새 뜬돌, 무량수전, 안양루 전날 늦은 밤에 영주에 도착해, 깜깜한 부석사 진입로를 걸어서 확인하고 숙소에 들었다가 아침 일찍 나온 참이었다. 부석사 경내는 산 쪽의 후문주차장에서 내려가는 게 가깝지만, 유홍준 교수가 책에서 극찬하는 사과밭부터 보려면 멀더라도 아래 주차장에서 순방향으로 걸어 올라가야 한다. 가람 배치도 그렇게 겸허하게 층계로 한 발 한 발 불국토佛國土를 오르도록 설계됐다. 오전 5시 좀 넘어 안양문을 들어설 때, 해는 안 떴지만 사방은 이미 낮이었다. 무량수전 옆의 '뜬돌' 부석浮石부터 본다. 봄 2월에 고승高僧 의상義相이 왕명을 받들어 부석사를 창건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6년·676) 이때 토착 불량배들이 역사役事를 훼방 놓자, 중국에서 의상을 사모하다 거절당하고 바다에 빠져 죽어 용이 되어 따라온 선묘善妙낭자가 커다란 바위를 들었다 놨다 하여 훼방꾼들을 겁주어 쫓았다고 한다. 절 뒤 부석이 그때 선묘용이 들었다 놓은 바위란다. 유명한 무량수전은 거의 남향으로 앉았지만, 그 안 본존 부처님(아미타불)은 90도 틀어 해 뜨는 동쪽을 바라보고 좌정했다. 아미타불을 모신 사찰엔 으레 안양문이나 안양루가 있다. 극락정토極樂淨土가 산스크리트 음역音譯으로 수마제須摩提, 의역하면 안양安養이다. 영주 부석사는 들어갈 땐 안양문, 통과해서 뒤돌아보면 안양루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바라본 안양루. 아미타불을 모신 불전이 무량수전 또는 극락전이고, 그 앞에 이르는 문이 안양문·안양루다. 최순우 관장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안양루 비껴 바라본 남동쪽 산줄기를 유홍준 교수도 찬탄해 마지않는다. 부석사를 안내하는 책자 어디를 보아도 이 장쾌한 경관의 사진을 실은 것이 없다. (중략) 이 한심스런 작태를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을 나는 강구해 보고 있는 중이다. 릴게임예시 지금까지 생각한 중에 가장 그럴듯한 것은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를 '국보 제0zero호'로 지정해 버리는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 이렇게 쓰고 10년 뒤 유 교수는 문화재청장이 되어 4년 가까이 재임했지만, '국보 0호' 공약은 지킬 수 없었다. 풍광은 인조물이 아니니 국보·보물이 될 수 없고 '명승'이라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필 유 청장 퇴임 무렵인 2008년 2월 남대문 방화사건이 일어난 후 문화유산에선 번호가 빠졌다. 한여름인데도 오전 7시 좀 넘어서야 무량수전 팔작지붕에 첫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몇 분 되지 않아 온전한 둥근 해가 되었다. 저 해가 서산 서해바다에 몸을 담그기까진 12시간 이상이 걸릴 테니, 차로 너끈히 추월하고도 8시간이 남는다. 마침 동행한 후배선생이 안동 봉정사, 하회마을, 병산서원을 안 가 봤대서, 차례로 둘러보고 나 혼자는 하회~병산 사이 화산(328m)도 걸어 넘어 봤다. 쓰시마 고려관음과 서산 부석사 국내 절도범들이 일본 쓰시마(대마도)의 두 절에서 불상들을 훔쳐 왔다가 검거된 일이 있다. 그중 간논지觀音寺에서 훔친 금동 관음보살상은 고려 말인 1330년 '고려국 서주지 부석사高麗國瑞州地浮石寺'에서 조성했다는 발원문을 품고 있다. 서주가 서산이다. 관음상의 본적지인 서산 부석사는 동쪽으로 도비산(382.8m)을 등지고 서쪽으로 부남호와 태안반도 남쪽 가지를 굽어본다. 도비산은 동쪽에서 일어나 눈썹 뒤집은 모양으로 휘면서 북서쪽 부남호 방향으로 꺼져든다. 조촐한 부석사 가람은 도비산 한중간에 서향으로 앉았다. 영주 부석사와 똑같은 아미타부처를, 여기선 극락전에 모셨다. 극락전 앞 강당은 단층인데도 안양'루'라고 현판을 달았다. 서산 도비산에서 내려다본 부석사. 서산판 뜬돌은 바다에 있다. 이곳 사람들은 '검은여'라고 부른다. '여'는 바다나 강의 수면 높이로 잠긴 바위를 이른다. 썰물 땐 섬이지만 밀물 땐 영락없는 대형 암초다. 서산 검은여는 물때 상관없이 늘 그 높이로 있는 게 마치 떠 있는 것 같대서 뜬돌(부석)이다. 1970년대에 바다를 막아 천수만을 만들며 없앨 뻔한 것을 주민들이 살려 냈지만, 더 이상 바다에 뜬 돌은 아니고 뭍에 갇힌 바윗덩이가 됐다 바다이야기 부활 . 과거에 물에 떠 있던 검은여가 의상대사 선묘용 전승과 결합해 서산 부석사 창건 설화로 역逆구성됐을 것이다. 그밖에 한 처녀가 이 까만 바위 위에서 바다에 빠져 죽었대서 '흑녀黑女'라는 설도 있다. 해마다 음력 4월에 '검은여제祭'를 지낸다는데, 언젠가부터 양력 4월로 바뀌었다. 절도범들이 훔쳐 온 고려 금동관음은 일본에 돌려주라는 확정판결이 나왔다. 일본 간논지는 부석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2025년 부처님오신날(5월 5일)까지 100일간 친견 법회親見法會를 허락했다. 간논지는 돌려받은 관음상의 3D 스캔 데이터를 한국 측에 제공했고,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중심이 돼 원형에 최대한 가까운 복원본을 제작해 올해 부처님오신날(5월 25일)을 앞두고 부석사에 봉안했다. 이름난 해넘이 맛집 서산 부석사는 이 일대에선 이름난 해넘이 '맛집'이다. 도비산둘레길 서쪽 끝 전망대와 부석사 템플스테이에서 보는 해넘이가 유명하다. 해가 직접 바다로 빠지는 것은 아니고, 도비산과 바다 사이에 드넓게 펼쳐진 부남호와 태안반도가 물드는 것을 구경하는 콘셉트다. 도비산에서 바라본 부남호 일대. 산촌의 아침과 달리, 바다 쪽 서쪽 하늘은 천천히 오래 물들어 갔다. 아침에 영주에서 맞은 그 해가 오후 7시 30분쯤부터 반도의 낮은 언덕들을 뚫고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25분쯤 걸려서야 완전히 사라졌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반도와 그 너머 하늘은 붉었다. 무량수전에서 맞은 해를 극락전에서 배웅하고, 서울로 돌아와서 비로소 알았다. 산촌의 아침해는 동편 산을 마주 보며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해 뜰 방향을 등지고, 그러니까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안양루 너머 산줄기와 들을 보며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다. 뒤늦게 검색해 본 '무량수전 일출' 사진들이 그렇게 말해 주고 있다. 부남호와 태안반도 너머로 지는 저 해는 아침에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맞은 그 해다. 여행 tip 서산 부석사 템플스테이는 '템플스테이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영주 부석사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없고, 인근 다른 절에 묵어야 한다. 봉화군의 축서사가 그중 가깝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성됐을 것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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