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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된 주거 사다리…비아파트 시장 경고음
“건축 규제 완화한다고 해서 당장 집 안 지어요. 시장에 받아줄(사줄) 사람이 없는데 건축 규제 완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경기도 동북권에서 다가구·다세대주택 개발 사업을 하는 김모 사장은 정부의 비(非)아파트 공급 확대 정책에 대해 “건축 환경이 좋아진 건 분명하지만, 공급 확대와는 거리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나 같은 개인사업자도) 건물 한 채(다세대주택 기준 6가구) 투자비가 수억원인데 분양시장이 망가져 자금을 회수할 길이 없다”며 “벌써 4년째 놀고 있다”고 전했다.
주택 수요가 많은 서울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오피스텔·도시형생활주택 등 비아파트 인허가를 돕고 있는 강대웅 리얼티메이트 이사는 “신규 사업 문의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입지 여건이 좋거나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오피스텔도 미분양일 정도로 분양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 강 이사는 “최근 정부의 잇따른 비아파트 공급 대책 이후에도 이렇다 할 변화가 없다”고 전했다.
정부가 다세대·연립주택·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공급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정작 시장에선 별다른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규제를 풀어 공급을 늘리겠다면서 한쪽에선 실거주 의무 강화 등 수요를 억제해 분양시장이 쪼그라든 영향이다. 비아파트는 청년 등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 사다리’로 일정 부분 지속적으로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당분간 공급이 늘어나긴 어렵다는 게 주택업계와 전문가의 진단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말 비아파트를 구매하는 청년을 위한 정책모기지와 전·월세 대출을 보증하는 상품을 새로 내놓기로 했다. 아파트 매매 수요를 비아파트로 돌리겠다는 의도다. 앞선 22일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비아파트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료를 최대 40% 할인하고, 5000㎡(수도권) 이상인 PF 보증 연면적 요건을 한시적으로 폐지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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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사업자 규제에 애꿎은 청년 피해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1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비아파트에 대해 별도의 규제 완화와 금융 혜택을 부여해 공급을 빠르게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8월 13일 내놓은 ‘주택 신속 공급 방안’에서는 다세대·다가구주택의 건축면적(660㎡ 미만→1000㎡ 미만)·층수(3개 층→4개 층) 규제를 완화하고, 건설자금 대출 한도를 가구당 7000만원에서 9000만원으로 높였다. 이를 통해 같은 면적에 이전보다 약 33% 많은 주택을 공급하겠단 방침이다.
정부가 비아파트 확대에 적극적인 건 주택 공급 부족 문제로 전·월세와 집값이 동시에 오르는 ‘트리플’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넷째 주(28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0.13%) 대비 0.09% 올랐다.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해 2월 3일 상승 전환한 뒤 86주 연속 상승, 종전 기록(85주)을 갈아치웠다. 올해 서울 아파트 전셋값 누적 상승률(9월 둘째 주까지)은 7.79%로 지난해 같은 기간(1.16%)의 약 4.7배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공사 기간이 짧아 비교적 빠르게 주택을 공급, 임대차나 매매시장에 붙은 급한 불을 끌 수 있다”며 “특히 오피스텔이나 도시형생활주택처럼 아파트키즈인 MZ세대에게 친숙한 아파트형 주택을 늘리면 임대차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 만큼 공급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이다. 주택 등 부동산 개발회사의 모임인 한국디벨로퍼협회 관계자는 “비아파트는 사실상 PF 등 대출이 막혀 사업을 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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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금융기관인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올해 서울 지역 PF 보증 건수도 ‘0건’이다. 금융권이 PF 등 비아파트 사업 대출에 소극적인 건 분양시장이 극도로 위축해 있기 때문이다. 이남수 투미컨설팅 부사장은 “비아파트는 무주택자가 분양받아 거주하는 주택이 아니라 임대사업자(혹은 다주택자)가 매입해 전·월세 물건으로 공급하는 주택”이라며 “하지만 민간 임대사업의 불확실성이 커 매입 수요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본지가 주택산업연구원에 의뢰해 비아파트의 주거 현황을 분석한 결과 비아파트 10가구 중 7가구는 전·월세 등 ‘임대’ 물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사업자가 매입해 무주택자에게 전·월세를 주고 있는 주택 비율이 69.4%에 달했다.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는 ‘자가’ 비율은 27.7%에 그쳤다. 주택 유형별로 보면 다가구주택과 다세대주택 임대 비율이 각각 81.4%, 50.2%로 자가 비율보다 높았다. 특히 정부가 8·13 대책을 통해 공급 확대를 추진 중인 오피스텔은 임대 비율이 91.4%에 달했다. 자가 비율은 7% 정도에 그쳤다.
오피스텔 등 PF 막혀 사업 포기 속출
도시형생활주택을 포함한 기타 주택은 94.6%가 임대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비아파트 시장 자체가 임대 중심이기 때문에 비아파트를 늘리기 위해선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다주택자·임대사업자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역시 주택 업계의 ‘비아파트 대출 완화’ 요구에 대해 “다주택자의 범위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다주택자 범위에서 비아파트나 도시형생활주택과 같은 준주택을 제외해야 임대사업 수요가 분양시장에 들어와 대출 완화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는 실거주 의무를 강화하고 있고, 아파트·비아파트 가리지 않고 임대사업자를 옥죄는 등 거꾸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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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입임대사업(주택을 매입해 임대하는 사업)은 아예 없애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나마 건설임대사업자(직접 주택을 지어 임대하는 사업)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이 남아 있지만, 건설임대사업자가 기존 임대주택을 처분할 길이 막혀 있어 신규 공급은 더디기만 하다. 박진호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건설임대사업자의) 임대주택을 이어받을 주체(매입임대사업자)가 없으니 투자금 회수를 못 하고, 이로 인해 신규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대신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지방공사를 통해 민간이 짓는 비아파트를 매입, 공공임대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LH는 향후 3년간 서울에서만 2만여 가구를 매입한다고 최근 밝혔다. 하지만 매입임대는 매입 조건(입지 등)이 까다로워 공급을 크게 늘리기 어렵다. 매입임대 계약 후 실제 주택 개발 과정에서 입지 부적합이나 땅값 문제 등으로 매입 이행을 못 하는 예가 많다.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LH 매입임대 신청 물량은 28만8317가구였지만, 실제 착공까지 이어진 건 1만4195가구로 신청 물량의 4.9%에 그쳤다.
주택업계와 전문가는 청년·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서라도 서둘러 비아파트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수도권 비아파트 착공 물량은 1만4000여 가구로 최근 10년 평균인 5만6000가구의 약 25%에 그쳤다. 2021년 6만2552가구와 비교하면 78% 감소했다. 올해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상반기 서울·수도권 비아파트 착공 물량은 7165가구로 최근 10년 같은 기간 평균의 24.3%에 그친다. 권대중 한성대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비아파트 공급 물량이 지난 몇 년간 전세 보증금 미반환, 건설 여건 악화 등으로 급감하며 주택 시장 전체의 수급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며 “매입임대사업 재정립 등을 통해 서민의 내 집 마련 징검다리인 비아파트 공급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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