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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마다 붉고 누렇게 말라죽은 소나무가 번졌고, 피해가 심한 곳은 앙상한 고사목만 남아 산이 통째로 죽어버린 듯했다. 푸른 소나무 숲과 문화유산이 어우러졌던 경주의 산하는 곳곳이 재난 현장을 방불케 했다.
지난달 28일 경북 경주 남산으로 향하는 길.
참혹한 흔적은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왔다. 산 중턱 곳곳의 붉은색 나무들은 흡사 가을을 혼자 일찍 맞이한 것처럼 보였다.
길에서 보이는 풍경은 가을의 풍요로움보다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됐다.
경주의 야산 곳곳은 붉은 기운이 역력했고, 심한 곳은 단풍이 절정을 맞이한 것처럼 울긋불긋했다.
소나무가 양옆으로 드리워진 경관도로에도 누렇게 뜬 재선충병 감염목이 군데군데 보였다.
경주역사유적지구 남산지구 앞 통일전에 도착하자 상황은 더 심각했다.
통일전 앞을 지키며 긴 세월을 버텼을 아름드리 소나무에는 벌목 대상을 의미하는 붉은색 선이 그였다.
우리나라의 국목(國木)처럼 여겨지며 기개의 상징이었던 소나무는, 누런 잎을 축 늘어뜨린 채 숨이 떨어진 모습으로 숙연한 마음마저 들게 했다.
향긋한 소나무 향은 온데간데없고, 갑옷 같던 껍질은 벗겨져 나가서 붉은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다.
손이 찔릴 듯 날카로운 소나무잎은 무뎌지고, 물렁물렁해진 모습으로 늘어졌다.
재선충병에 선 채로 죽음을 앞둔 고목에서 뒤편으로 펼쳐진 남산으로 시선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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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곳곳에 문화재가 산재해 노천 박물관이라 불리는 남산에도 재선충병이 번져 있었다.
산 중턱에 번져가는 감염목들은 남산 곳곳에 보이는 석탑을 옥죄어가는 듯 보였다.
세계문화유산 경주 남산에 퍼진 소나무재선충병 (경주=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지난달 28일 경북 경주시 남산에 소나무재선충병이 퍼져 있다. 경주 남산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노천 박물관으로도 불리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2026.10.1
남산을 즐겨 찾는다는 경주 시민도 걱정을 내비쳤다.
이날 칠불암까지 다녀왔다는 최병한(69) 씨는 "정상 쪽 바위에 잇는 소나무도 죽었던데 (재선충병이) 아주 심하고, 무방비 상태 같다"며 "(소나무에) 구멍 뚫린 곳에서 톱밥이 막 쏟아져 일반인이 보기에도 심각한 상태"라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등산로 주변 소나무가 다 죽었는데, 한 두그루가 아니라 손쓸 수가 없을 것 같다"며 "불국사 아래 하동에 살고 있는데, 우리 집에 있는 소나무도 세 그루 중에서 한그루가 재선충병에 걸려서 경주시에서 시료를 채취해갔다"고 말했다.
그는 "3∼4년 전부터 재선충병이 번진다고 했는데, 심각하다고 생각한 건 작년부터"라며 "동해안 쪽으로 여행을 다녔는데 포항, 울진, 영덕 동해안 쪽은 엄청 심한 것 같고, 특히 경주에 영지 쪽은 (재선충 감염목으로) 새카맣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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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재선충병 퍼진 경주 남산 (경주=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지난달 28일 경북 경주시 남산에 소나무재선충병이 퍼져 있다. 경주 남산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노천 박물관으로도 불리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2026.10.1
그의 말을 따라 재선충병 감염이 심하다는 경주시 외동읍 영지로 향했다.
수 시간째 경주에 머무니, 영지로 향하는 길에서 보이는 산에 퍼진 재선충병이 눈에 익었다.
하지만, 영지에 도착해보니 재선충병이 눈에 익었다는 생각이 무섭게 느껴졌다.
이곳은 재선충병이 휩쓸고 간 폐허였다.
도로변 쪽의 소나무들은 모두 고사한 채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자아냈다.
좀 더 자세한 상황을 확인하고자 드론을 띄우자 경악스러운 풍경이 나타났다.
재선충병이 휩쓸고 간 자리는 잿빛만이 남았다. 앙상한 가지로 하얗게 남은 고사목들은 끝도 없이 펼쳐진 무덤의 십자가 같았다.
재선충병이 퍼지고 있는 남산의 고목이 최후를 맞이한 장군이라면, 이곳은 이미 전쟁에 패해 숯 더미가 된 도시였다. 산이 통째로 죽어있었다.
산림청에 따르면 경주 남산의 재선충병 감염률은 30∼40%에 달해 특별방제 구역으로 설정됐다.
그러나 남산이 문화재 보호구역이기 때문에 수종 전환은 검토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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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관계자는 "금년도 안에 예산을 최대한 활용해 피해목에 대해서 최대한 방제할 계획"이라며 "일반적인 숲이라면 수종 전환을 고려할 수 있지만, 남산은 문화재보호구역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감염목을 베어버리면 타 조경수들도 피해를 볼 수 있어 수종 전환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내륙까지 번진 재선충병이 지나온 해안선은 이미 초토화 상태였다.
재선충병이 심각한 포항 남부 구룡포 해안선은 잿빛 고사목들이 즐비했다.
푸른 해안을 따라 심어진 소나무 숲들은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었다.
솔수염하늘소가 옮기는 소나무재선충병은 1988년 부산에서부터 시작돼 해안선을 타고 조금씩 북쪽으로 올라왔다.
지난 수십년간 재선충병 방제를 노력해왔지만, 재선충병 특성상 조금이라도 감염목이 남아있으면 다시 번져나가는 통에 완벽하게 방제하지 못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감염되면 벌목해야만 하며 예방으로만 방지할 수 있다.
솔수염하늘소 박멸을 위한 방제 등으로 예방 활동을 강화하고 있지만, 지난 수년간 급속도로 변화하는 기후환경 탓에 솔수염하늘소의 활동 시기가 늘어남에 따라 재선충병이 급속도로 확산한 것으로 산림청은 보고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재선충병이) 새로 번지는 곳부터 확실히 잡아나가면서 안쪽으로 밀고 들어가는 그런 대책을 수립했다"며 "그렇다고 해서 (이미 재선충병이 확산한) 경주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며, 문화재가 많은 구역은 보호 소나무 숲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구역을 조성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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