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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도자기 연구소에서 첫 경력
서른 중반 여주에 자리잡고 작업 시작
겨울 풍경서 착안, 옥빛 도는 설백자 완성
원료 흙 수급·산업 기반 약화에 깊은 우려
아들 조용준 작가… “함께 가업 이어갔으면”
최초, 최다, 최소 그리고 유일. 숫자 ‘1’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팔십 해를 걷고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딛으며, 우리가 딛고 있는 경인 지역 바닥에 새겨진 1의 의미들을 찾아봤다. 가장 위대한 하나에서 가장 비천한 하나까지 명예롭거나 때로 수치스러웠던 ‘1’들 속에서 길러낸 이야기를 독자들께 소개한다.
올해 여든하나, 도자인생 60년. ‘여주시 도예명장 1호’ 고성도예 조병호 명장을 만났다.
경인일보가 창간 81주년을 맞은 올해, 조 명장도 81세가 됐다. 흙을 처음 만진 때부터 헤아리면 도자와의 세월은 60년이다. 여주시 대신면 고성도예 작업장에서 만난 그는 첫 질문에 자신의 이력 대신 순번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사실은 제가 1호가 안 되고 한 4호 정도 됐어야 했다”라고 운을 뗐다.
여주군 시절에 도예명장제를 시행하며 그를 제1호로 지정한 것은 2006년 4월20일이다. 정작 본인은 앞서 인정받았어야 할 선배들이 있었다고 했다. 여러 사정으로 선정이 미뤄지는 사이 자신이 선정됐다는 것.
‘여주시 도예명장 1호’ 조병호 명장이 도자를 살펴보고 있다. /여주시 제공
그러면서 그 과정을 탓하기보다 제도를 다듬는 쪽을 택했다. 여주도자기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지내며 그는 명장 제도의 틀을 세우고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후 중앙 명장 제도의 심사 기준을 참고해 평가 방식을 단계적으로 손봤다. 그는 “어떤 제도를 만들 때 너무 크게 만들기보다는 작게 시작해서 。. 키워나가는 게 낫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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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여주는 김영길·박광천·최병덕·이형우·김흥배·지두현·김창호·문찬석·이청욱·신동문으로 이어지는 명장을 배출했다. 제도가 자리를 잡는 데 20년이 걸린 셈이다.
■ 흙을 바꾼 1985년
2014년에 열린 여주시 도예명장 불우이웃돕기 도자기 바자회. /여주시 제공
그의 도자인생 출발。은 물레가 아니라 시험실이었다. 대기업 도자기 연구소에서 15년가량 흙과 유약, 발색과 현장 감독을 맡았다. 연구실에서 데이터를 만들고 그것을 현장에 통과시키는 일을 반복하며 도자의 기초를 다졌다. 1979년 9월 여주에 자리를 잡았고, 그때 그의 나이 서른 중반이었다.
창업 6년만인 1985년, 남이 가공해 공급하던 흙을 버리고 태토 제조 방식을 직접 바꿨다. 여주 흙은 직장 시절 대기업에 납품을 주선할 만큼 꿰고 있던 터였다. 조 명장은 흙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수비한 흙은 눈송이처럼 모서리가 있어서 서로 응결이 되는데, 기계로 가공하면 둥근형이 돼 응결이 좀 힘들어요.”
물레를 차던 직원들이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때 그가 직원들에게 건넨 말은 “아침에 낳은 송아지를 매일 들면 큰 소가 돼도 든다”였다. 결과는 색으로 나타났다. 바탕이 눈에 띄게 밝아졌고, 전통 방식을 고수하던 동료들이 고성도예의 흙을 탐냈다. 다른 업체들이 같은 방식에 적응하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렸다. 그는 이를 “여주 도자기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 설백에서 옥빛까지 20년
지금의 설백자는 그 흙에서 다시 20년이 걸렸다. 초기 백자가 밝되 차가웠다면, 지금은 안쪽에서 옥빛이 돈다. 착상은 실험실이 아니라 겨울 풍경에서 왔다. 그는 색의 출처를 이렇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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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얼음을 보면 두께에서 파란 옥색이 납니다. 장독대에 눈이 쌓였다가 녹을 때는 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고요.”
거기에 목화솜의 포근함과 조선시대 선비 의상의 옥양목을 겹쳤다. 자개처럼 화려한 쪽은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했다. 조 명장은 나일론과 솜을 비교하며 “나일론은 차 보이고 솜은 포근하다”고 말했다.
기술적으로는 여덟 가지가 넘는 원료 가운데 빛을 내는 성분을 찾아 배합했고, 소지와 유약이 대략 7대3으로 색을 만든다고 한다. 소성 과정에서 산화에서 환원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조절도 색을 가른다. 다만 그 발광 성분이 무엇인지는 화학 기호로도 특정하기 어렵다. 소장자들 사이에서는 옥을 담은 항아리, 곧 ‘옥호(玉壺)’라는 이름이 따라붙는다.
■ 실패담을 물어라
아들 조용준 작가와 조병호(오른쪽) 명장. /고성도예 제공
60년 작업에서 그가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성공담이 아니다. 조 명장은 “실패담도 들어라. 그러면 그분들이 가다가 실패한 지.을 아니까 답습을 안 한다”라고 당부했다.
본인의 실패는 청자였다. 30년쯤 전 강진 도요지에서 도편을 수습해 분석했고, 주변 돌까지 가져와 900여 차례 시험을 거쳤다. 소지와 유약은 맞췄지만, 옛 원료와 일치시키지는 못했다. 결국 접었다. 그는 “청자 소지와 백자를 같이 하면 철분 때문에 백자가 희생당해요”라고 이유를 들었다.
■ 그의 걱정거리
조병호 명장이 여주시 도예명장 기술전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여주시 제공
인터뷰의 상당 부분이 본인 작품이 아니라 흙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주에는 천년 전 고려백자 가마터가 있고 도요지가 80여 곳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원료를 가공해 공급하던 업체들이 고령화와 채산성 악화로 하나씩 문을 닫고 있다. 뉴질랜드·호주산이 들어오고, 국내 가공업자가 베트남에서 배합해 컨테이너로 들여오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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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균질하지 않은 원료가 들어와도 현장에서는 알아채기 어렵다.
조 명장은 “10년 내지 15년 후가 되면 여주 도예인들이 어디서 흙을 받을 것인가가 벌써 뻔히 보인단 말이죠”라고 우려했다.
그가 1999년부터 공동시험실 설치를 요구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험실은 만들어졌지만, 들어오는 원료의 로트별 편차를 검사하고 사고 원인을 가려낼 인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업체들의 손실은 계속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정작 자신은 시험실 운영에 한 번도 참여하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쉬워했다.
‘여주시 도예명장 1호’ 조병호 명장이 가마터에서 도자 작업을 하고 있다. /여주시 제공
아들 조용준 작가는 이중투각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아버지의 평가는 담백하다. 불량이 많이 나오는 까다로운 기법이라 사람을 지치게 한다는 것. 그러면서도 도자인생 60년을 맞은 올해 안에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고, 아들과 함께 가업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조 명장은 “아이가 하고 있는 것과 제가 해온 것을 하나로 합쳐서 이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여성 도예인들을 언급했다. 기량은 충분한데 남편의 조력자로 남아 있는 이들이 여주에 꽤 된다고 했다. 조 명장은 “그분들이 나서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여주에 이러한 이들도 있다는 걸 알려야죠”라고 강조했다.
‘1호’라는 호칭에 대해 그는 끝내 책임감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대신 후배들을 미는 힘이자 당기는 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여주시 도예명장이란?
여주시 도예명장은 도자기술로 전통문화예술을 계승하고 지역 도예 발전에 공헌한 장인을 선정하는 제도다. 여주에 10년 이상 주민등록을 두고 도예산업에 30년 이상 종사한 사람 가운데 매년 1명 이내로 뽑는다. 선정되면 연구활동비 500만원을 받고, 해마다 2차례 이상 기·예능을 공개해야 한다.
설백자 달항아리. /고성도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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